파이널 판타지 X / X-2 HD 리마스터
플레이 시기 - 2014년 2월 28일 ~ 4월 30일
플레이 타임 - 112시간 + 91시간 + 9시간 = 약 212시간
뭐라고 해야하나,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이야기하는게 오히려 어려워지는게 이 게임에 대한 제 마음이네요.
발매년도부터 따지면 파이널 판타지 10은 2001년 일본에 처음 발매되고 영어판 발매를 거쳐 2002년에 인터네셔널판이 나오면서 우리나라에도 정식 발매된 작품입니다. 10-2는 2003년 일본에 발매되고 같은 해 영어판이 나오면서 파이널 판타지 사상 최초로 한글화가 되어 우리나라에 정식발매되기도 했으며, 이어서 2004년에 인터네셔널 & 라스트미션판이 일본에 발매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리마스터판은 오리지널 기준으론 각각 13년, 11년, 인터판 기준으로도 12년, 10년만에 재발매되는 셈입니다.
저는 2004년에 플레이스테이션2를 구입하고서 2005년말에 최초로 콘솔로 플레이해보는 RPG로서 파이널 판타지 10을 즐겼고, 그때도 이 작품이 모든 면에서 정말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146시간을 들여가면서 칠요일의 무기에 스피어반 공사를 거쳐 페넌스까지 때려잡고 2006년초 쯤 끝을 봤습니다. 물론 이어서 10-2도 플레이했는데, 10-2 역시 게임 플레이는 물론이고 너무 아쉬웠던 10의 엔딩 이후를 정말 훌륭하게 다룬 후일담으로서 스토리면에서도 너무 만족하며 플레이했고, 2년 뒤인 2008년 초에는 정식발매도 안된 인터네셔널&라스트미션판을 구해서 약 130시간을 들여서 10-2의 거의 모든 요소를 끝장냈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긴 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주종목은 JRPG입니다. 영웅전설4로 지금같은 본격적인 게이머가 되었기에 영웅전설 시리즈와 이스 시리즈를 비롯한 팔콤의 게임들을 JRPG의 정석이자 최고봉으로 치는 팔콤빠고, 파판과 킹덤하츠 시리즈를 바로 그 다음 수준으로 좋아하는 스퀘어팬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개별 작품으로서 제 인생 최고의 JRPG로 꼽는 작품은 파판10+10-2이고, 이건 아마 영원히 변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 좋아하는 작품이기에 이번 리마스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기뻤고, 특히 한글화 이야기가 나왔을 땐 뭐라 해야하나, 진짜 살아있어서 다행이란 기분? 그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아무튼 한글화 발표 이후 1년 정도가 지나고 옆동네는 발매했는데 여긴 발매일도 공개 안된 상태로 지루하고 답답하고 짜증난 상태로 기다리다보니 결국 한글판이 발매되었습니다. 겨우겨우 예약판매에 성공해서 2월 28일 받아들고 플레이를 시작했을 때 정한 목표는 더도 덜도 말고 딱 PS2 시절만큼 즐기는 것. 하지만 10의 초코보, 번개피하기를 비롯한 지옥같은 미니게임과 끝이 안보였던 스피어반 공사, 10-2의 크리쳐 사전 완성은 결코 쉬운게 아니었기에 그렇게 기다렸던 타이틀임에도 막상 받아들고나니 감동과 함께 걱정이 생기더군요.
하지만 결국 4월 30일, 딱 플레이 두달만에 더블 플래티넘은 물론이고 원래 계획했던 목표치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플레이한지 8년, 6년이나 된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미 한번 해본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플레이 타임마저 줄일 수 있었죠. 물론 PS2 시절 고생했던 부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생했습니다만, 결국 넘치는 애정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개별 플레이타임 파판10 112시간 + 10-2 91시간 + 라스트미션 9시간으로 총 212시간만에 모든걸 끝냈네요.
리마스터링의 시작을 무쌍 오로치Z로 봐야할지 갓오브워 컬렉션으로 봐야할지는 살짝 애매하긴 한데, 아무튼 그걸 시작으로 PS3 세대엔 수많은 타이틀이 리마스터됐습니다. 그 중엔 메기솔HD나 오오카미처럼 정말 제대로 리마스터되어서 나온 작품이 있는가 하면 성의도 안보이고 원판엔 없던 프리징 버그를 달고 나온 데메크나 원 제작자가 화를 낼정도로 역대 최악의 리마스터링 수준을 보여준 ZOE 초기판도 있는 등 그 퀄리티는 가지각색이었죠. 그래서 분명히 파판10도 기대반 걱정반이었을 게이머분들도 있었을것 같은데, 최소한 전 이 게임의 리마스터링 퀄리티엔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스퀘어의 리마스터링 수준은 킹덤하츠 1.5 HD에서 확실히 증명됐거든요. 물론 킹덤하츠는 자기네가 직접 했고, 파판10은 어디 중국에 외주를 맡겼다고 한 것 같은데, 현 스퀘어 투탑 타이틀 중 하나인 킹덤하츠가 그정도로 퀄리티가 높았으니 나머지 하나인 파판 역시 말할것도 없었겠죠.
뭐 결론적으로 파판10, 10-2, 라스트미션 모두 정말 훌륭하게 리마스터링 되서 나왔습니다. 해상도만 해도 네이티브 1080P 지원에 모델링은 새로 다듬기까지 했다고 하고, CG 무비들마저도 새로 해상도에 맞춰서 깔끔하게 잘 나왔습니다. 심지어 10 본편은 BGM까지 어레인지했죠. 단점이라면 PS2 원판에 비해 로딩이 상당히 길어졌다는 점인데, 짜증낼 정도로 긴건 게임 처음 기동시의 로딩과 그렇게 기동해서 처음 전투에 돌입할 때까지의 로딩 정도고, 나머지는 그럭저럭 참고 플레이할만한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리셋 노가다 같은게 필요한 게임은 아니니 저 짜증나는 로딩으로 고생할 일은 많이 없고요. 다운로드판의 경우엔 그나마 좀 낫다고 하는데 전 디스크로 구입한지라 잘 모르겠군요.
사실 한글화는 13 본편부터 쭉 해오고 있는만큼 이번에도 될거라고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한글화의 퀄리티는 그냥 보통 수준으로 이미 한글화됐던 10-2만 놓고 보면 아무래도 PS2판이 조금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역인지 의역인지 헷갈리는 부분도 가끔 나오는데 많진 않고, 가끔 자막이 잘려서 안나오는 부분이 좀 거슬리는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대사는 물론이고 전투때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까지 자막을 붙여가면서 한글화한걸 보면 꽤나 정성은 들인것 같다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재밌는게 하나 있다면 10-2는 안그런데 10 본편의 경우 혹시 파판랜드 번역을 참고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사가 토씨 하나 안다르고 같다는 점.
음성쪽은 PS2 시절과는 달리 일어음성인데, 이게 꽤나 의미있는게 10도 10-2도 인터네셔널판 요소가 추가된 일어음성판이 발매되는건 이번이 처음이란 말이죠. 10의 경우 플레이한건 정식발매판의 영어음성이지만 워낙 좋아하던 타이틀이라 일어음성쪽도 접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10 본편은 영어음성쪽이 훨씬 훌륭합니다. 누구라도 동의하는 아론과 젝트는 물론이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티다와 유우나까지 전부요. 딱 하나 정말 호불호가 갈릴만한게 있다면 캐릭터 해석이 바뀌어버린게 아닌가 싶은 시모어 정도? 아무튼 그래서 음성 선택이 불가능한건 조금 아쉬웠어요.
근데 10-2는 애초에 일어음성밖에 지원하지 않았던 라미를 제외하면 이번에야 처음으로 일어음성판을 접해보는건데 영어음성판만 했을땐 전혀 모르던 요소가 있더군요. 유우나가 10 본편 티다의 말투인 '~임다', '~했슴다'를 따라한다는 점. 이게 스토리상 생각하면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영어판에선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눈치를 못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10은 몰라도 10-2를 생각하면 호불호를 제쳐두고도 일어음성쪽으로 플레이하는게 조금 더 '맞다' 싶긴 한데...
문제는 10과 10-2 모두 단순히 언어 말고도 일어판 영어판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죠. 가장 중요한건 파판10 엔딩의 대사가 "고마웠어"인지, "네가 좋았어"인지. 그리고 이건 이번에야 처음 안 사실인데 10-2 번개평원의 1000마디 말 공연이 유우나 솔로인지 렌과의 듀엣인지. 전자의 경우 동서양 게이머의 정서의 차이를 고려해서 바꾼 대사라지만 개인적으론 '네가 좋았어'쪽에 훨씬 공감이 가고, 후자쪽은 보컬이 코다 쿠미 솔로냐, 스윗박스의 듀엣이냐의 차이 때문에 연출이 바뀐건데 아무래도 듀엣쪽 연출이 훨씬 인상깊었기에 일어판쪽은 밋밋하더군요. 그 외에도 영어판들엔 추가된 음성, 예를 들면 10 기도자들 재방문시의 기도자 음성이라든지, 10-2의 최강신라의 음성이라든가 이런게 꽤 있는데, 일어판 내면서 새로 녹음할줄 알았더니 그대로 다 무음처리네요. 또 10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가수인 이수영씨의 얼마나 좋을까도 있지만 이건 너무너무 아쉬워도 별 수 없는거고... 뭐 한글화까지 된 메리트에 비하면 나머지는 사소한 문제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PS2 인터판들에 비하면 완전판 아닌 완전판을 보는 것 같아 찝찝하단 말이죠.
게임 내적으로 들어가면 이제와서 딱히 더 할 말이 있나 싶습니다. 파판10은 스토리적인 면에선 JRPG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훌륭하게 엮어서 보여줍니다. 티다와 젝트가 보여주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야기, 티다와 유우나가 보여주는 연인간의 사랑 이야기, 아론이 보여주는 과거있는 아저씨의 이야기, 여행을 같이하는 동료들 각자의 사연과 동료애, 제대로 뒷통수를 때리는 이중 반전 구조 등 정말 JRPG 단편 작품 하나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완벽하게 다룬 작품이 파판10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재밌다 잘 만들었다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장면장면이 정말 잘 짜여져 있어서 진실을 알고 난 티다가 절규하는 장면이나 자나르칸드로 가는 길, 유우나 레스카와의 대면 이벤트, 엔딩 시퀀스는 몇번을 다시 봐도 몰입하게 됩니다.
파판10-2 역시 본편 이후의 이야기를 본편과 구석구석 세밀하게 연관지으면서 결말까지 만족스럽게 정말 잘 풀어낸 모범적인 후일담이죠. 말이 쉽지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안그래도 호불호가 갈리던 13의 스토리를 나락까지 떨어뜨린 13-2와 라이트닝 리턴즈, 후속작으로 보기에도 단순한 후일담으로 보기에도 둘다 애매한 테일즈 오브 엑실리아 2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0-2는 후일담에 정말 충실해서 본편 이후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보여주면서도, 결코 10-2 자체의 스토리도 부실하지 않죠. 10, 10-2, 라스트미션의 스토리 구성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참 잘짜여져 있어서 10이 스피라의 현재, 10-2가 과거, 그리고 라스트미션이 미래를 그리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 파판10의 스토리를 따질 때 절대로 10만을 따로 놓고 보지 않습니다. 파판10은 10-2가 있어서 완성되는, 10과 10-2를 하나로 놓고 봐야 빛을 발하는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벤트 장면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두 작품의 BGM 역시 최고입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10 본편의 '자나르칸드에', '얼마나 좋을까', 10-2의 '1000마디의 말'은 말할 필요도 없고, 10-2의 메인 테마인 '영원 - 빛과 파도의 기억'이나 인터네셔널 추가곡인 '바람의 무늬 - 세 사람의 궤적'은 저런 곡들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을 정도의 명곡입니다.
게임성 역시 두편 모두 JRPG의 모범이 될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10의 경우 종반까진 철저하게 스토리를 따라가며 진행되는 작품이라 자유도가 없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이 작품의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적절한 전개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종반에 비공정을 얻은 이후론 훈련장을 필두로 본편 플레이 시간의 서너배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파고들기 요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판 넘버링 시리즈 최초로 도입된 완전한 턴방식 전투인 CTB 시스템 역시 이질감은 있을지언정 상당히 완성도 높은 시스템이고, 스피어반 시스템 역시 일반적인 진행에도 파고들기에도 재밌는 꽤나 특이하고도 훌륭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즈 최초로 소환수를 직접 조종할 수 있다는 것도 재밌는 요소인데, 바하무트를 필두로 하는 파판10의 소환수 디자인은 역대 최고로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바, 바하무트, 요짐보, 아니마가 압권인데, 특히 아니마는 도대체 어떻게 디자인하면 저정도로 무시무시하면서도 멋들어진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작품이 리메이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리마스터에 그친지라 게임의 편의성까지 나아진건 아닙니다. 옛날 게임답게 게임오버 당하면 재도전같은거 없이 거기서 끝장이고, 꽤나 긴 이벤트씬은 스킵도 안되서 보스전 재도전이나 회차 플레이엔 무지무지 불편합니다. 또한 역대 최악의 난이도를 가진 미니게임들 역시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에 이 작품을 완전히 끝내는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10-2도 10 본편만큼 훌륭합니다. 다시금 도입된 ATB부터 시작해서 5까지의 잡 시스템을 개성있게 녹여낸 드레스피어 시스템에, 인터판에서 새로 추가되고 나중 13-2의 전신이 되는 크리쳐 크리에이트 시스템 역시 상당히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그 외에 10보다 다양하면서 10보단 덜 하드코어한 미니게임이나, 모든 몬스터 오버소울, 크리크리 컴플리트, 플레이에 따라 진행이 바뀌는 이벤트에 궁극적으론 추가 엔딩을 위한 스토리 달성율 등 어떻게보면 즐길거리 자체는 10보다 훨씬 풍부한게 10-2입니다. 인터판에 추가된 라스트미션은 솔직히 그렇게 재미있는 물건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보너스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진행 도중 볼 수 있는 이벤트를 생각하면 한번쯤 클리어할 가치는 충분한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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